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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쳐다보는 언론의 왜곡된 시선

‘실체적 진실’ 만 믿고, ‘공세적 프레임’은 중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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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주필
기사입력 2018/03/15 [09:37]

평창 패럴림픽에 북한 선수단이 올 것이다. 그들도 많은 언론의 조명을 받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평창동계올림픽을 돌아보고 그들을 맞이하는 우리의 태도도 성숙하고 어른스러웠으면 해서 글을 쓴다. 지난 평창올림픽을 통해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협상단이 방남해 많은 이야깃거리를 남기고 떠났다. 뭔가 굳어있는 듯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일사불란한 율동과 구호, 연주단의 연주 등을 보고 동족으로서 호감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는가 하면, 반대로 비하하듯 내려다 보고 까칠한 반응을 보인 경우도 있었다. 후자의 경우, 보수매체와 종편, 그리고 자유한국당을 비롯한 자칭 보수세력들에 해당된다.

 


 

북한 응원단 비웃었던 언론들…문화·풍속 차이 이해 無

문화행사로 멸시하는 태도는 은연중 정치공학 구도 몰기

보수세력의 이중성…지난날의 자기과오 반성없이 비판만

자기 만에 공작마인드 버리고…상식의 합리 무대 나와야

 

▲ 지난 2월9일 오후 강원도 평창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남북 선수들이 한반도기를 들고 입장을 하고 있다. <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그들은 여전히 대결적이고 냉전적이며 조롱거리로 북한을 대한 듯했다. 북한응원단의 똑같은 목소리와 똑같은 동작 등 일사불란한 응원 모습과 가면을 쓰고 응원하는 모습을 비추며 연일 독재체제의 통일성, 체제선전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같아 유치하다는 식으로 보도했다.

    

평창올림픽 응원단

 

북한의 응원단과 연주단, 응원단이 우리와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서 북한 팀이고, 다른 팀이다. 그들 특유의 방식으로 응원하고, 그들 특유의 구호를 외치는 것이 우리에게는 생소한 것일 수도 있다. 덜 세련되고 촌스러운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같지 않으면 세련되지 못하고 유치하다고 비판할 수 있을까. 다를 수 있는 것을 가지고 틀렸다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우리 기준에 안맞다고 해서 덜떨어졌다는 인식은 덜 성숙된 태도가 아닐까.

 

일사불란한 팀웍을 가지고 얘기한다면 세계에 ‘한류 POP’으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방탄소년단, 엑소, 동방신기가 있다. 이들은 북한 응원단과 연주단보다 더한 통일성, 집합성, 균일성, 일사불란성으로 세계의 시선을 끌어모으고 있다. 그것과 북한 응원단이 보인 것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 각기 다른 색깔로 진정성을 보여주었다고 하면 안되는가.

 

두 팀 모두 피나는 훈련을 통해서 통일성과 집합성을 가져오고, 거기에 열정과 영혼을 담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그룹의 땀은 칭송되고, 북녘 팀의 땀은 시대에 떨어진 낡은 것으로 치부하고, 비아냥대는 것이 옳은 태도인가. 북한 사회자의 변사 같은 억지스러운 진행과 멘트도 유치하다고 비웃는 것을 보았다.

 

엊그제만 해도 우리 역시 북한과 비슷한 억지스러운 방송 멘트가 주류를 이렀다. 멀리 갈 것도 없다. 80년대 후반까지 우리 영화를 한번 보기 바란다. 당시엔 동시 더빙이 힘들어서 성우가 대신 주인공 목소리를 내는데, 대사가 북한 배우의 목소리와 별 차이가 없다. 본인 목소리로 더빙해도 우리 일상생활 용어가 아닌 어색한 영화적 언어 인터네이션이었다.

 

그 뿐인가. 스포츠가 국력의 상징이 되었던 60-80년대 임택근 이광재 아나운서의 애국적인 웅변조의 중계방송을 잊지 못한다. 아마도 60대 이상은 그들 목소리를 듣고 자랐을 것이다.

 

“친애하는 고국 동포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조국의 건아, 000선수가 마늘 먹은 힘을 다해, 매운 고추장을 먹은 힘을 다해 비장한 각오로 기어이 마라톤 종착점에 1위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순간입니다.”

 

“우리의 차범근 선수, 화랑정신의 후예답게 30m 드리볼로 적진을 부수고 단숨에 쳐들어가 한꼴을 넣었습니다”

 

이런 과장되고 억지스런 중계방송을 듣고 열광하지 않은 국민이 없었다. 그때 우리는 그것이 유치하거나 억지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일체감과 동질감, 애국관이 국민 가슴마다에 옹골차게 들어찬 순간이었다.

 

그후 자연스런 일상용어로 방송 진행 컨셉이 바뀌고, 국민동원체제적인 강요가 아니라 더 친근한 감성적 호소가 부드럽게 스며드는 방송 멘트로 바뀌었다. 불과 20-30년 전의 일이다. 일방적 강요에 구속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방송으로 이행되면서 아나운서의 멘트나 진행방식이 오늘날 말하는 자연스런 방송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광재 임택근 식 방송이 아니면 힘이 없어보이고, 비애국적(?)인 방송으로 치부했던 우리가 지금 북한의 응원단이나 연주단의 덜 세련된 응원과 연주 모습을 눈 아래로 내리깔고 보는 태도는 한마디로 건방진 태도다. 엊그제까지의 자기 가난을 부정하는 천한 졸부 근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우리 역시도 십여만 명이 동원된 매스게임과 카드섹션을 했고, 학창시절 교련복을 입고 친구들과 군대식으로 거리를 활보했던 기억도 뚜렷하다.

 

이제는 다양성을 수용할만큼 여러모로 여유로워졌다. 평창올림픽 개막식과 폐막식에서 영하 10도를 오리내리는 혹한 속에 맨몸의 상반신을 드러내고 등장한 통가의 근육 맨의 입장 모습이 유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멋으로 이해하고 있다. 나라마다 장례풍속이 다르듯이 문화와 풍속이 다르고, 그래서 그런 차이가 있을 뿐이다.

 

▲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북한 예술단이 평창동계올림픽 관련 방남 일정을 모두 마치고 지난 3월12일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8평창사진공동취재단>

 

반공의식 적대의식

 

그런데 북한 단체들의 언어나 동작 하나만은 보아줄 수 없다는 듯 차별하고 희화거리로 삼는 세력들. 여전히 대결적 반공의식과 적대의식이 내재돼있음을 보여준다. 주로 보수우파 세력이고, 보수매체들이다. 무엇이 두려워서일까. 왜 여유와 아량이 없을까. 경제 차이가 40분의 1로서 이미 승부가 끝난 것을 가지고 말이다.

 

문화행사 하나 가지고도 멸시하는 듯한 태도는 은연중 정치공학적 구도로 몰아가서 이익을 취하겠다는 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올림픽 기간 내내 북의 권력 3대세습 독재체제, 문화도 정치적으로 움직이며, 호전성과 잔인성을 갖고 있다는 시선이 지속됐다.특히 보수매체의 까실까실한 보도다. 그렇다고 그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그렇다면 냉정하게 돌아보자. 이 나라의 주력 보수매체들의 경영구조는 어떤가. 그들이야말로 세습을 3대, 4대에 걸쳐서 이루어온 조직이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기준에서 본다면 북한 김일성 집단의 세습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자본주의 시스템을 차용하긴 했지만 주식을 패밀리들이 독식하면서 자본의 폐쇄성을 보인 가운데 경영권, 인사권을 100% 행사해오고 있다. 국민의 재산인 정보를 가공해 장사를 하는 언론기업이라면 당연히 공공성과 공정성이 담보돼야 하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정론의 가치에 충실해본 적이 있는가. 멀리 갈 것도 없다. 박정희의 유신 말기 명색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선관위의 투표독려 구호, 즉 ‘너도나도 투표하여 유신정부 이룩하자’는 구호를 보고 언론이 단 한번이라도 “이건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선거구호가 아니다” 라고 비판한 적이 있는가. “중립적인 선거관리를 해야 할 중앙선관위가 이런 명백한 선거법위반 구호를 내릴 수 있느냐”고 항변한 것을 보지 못했다. 이런 구호야말로 김일성의 주체사상 구호와 무엇이 다른가.

 

사회적 약자 편에 서야 한다는 언론의 첫 번째 소명을 조소라도 하듯,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진상을 밝히라고 단식투쟁하는 유가족들 앞에서 햄버거, 파짜를 쌓아놓고 폭식잔치를 벌이는 극우집단의 광기를 보고도 언론은 침묵하거나 외면했다. 보도하더라도 스케치식으로, 또는 기계적 중립보도를 취했다.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이런 광경을 모른 체 했다.

 

살수차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고 병동에서 1년만에 숨진 사람을 다른 합병증으로 죽었다는, 이른바 외인사(外因死)라고 발표했을 때 언론은 어땠는가. 서울대병원 보도문만 그대로 가져다 보도했다. 유치원생이 보아도 물대포 맞고 숨졌다는 사실을 모른 체 했다. 왜 단 한번이라도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었나. 질문과 의문이 없는 언론이 언론인가.

 

전두환 정권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머리털도 국가의 것인 양 길거리에서 장발족을 줄 세워놓고 바리깡으로 머리 가운데로 밭두렁을 만들고, 스커트 길이도 국가가 관리하겠다는 듯 길거리에서 여자들을 세워놓고 무릎 위를 자로 재는 세계토픽감을 거리낌없이 저질렀을 때, 언론들은 무엇을 했나. 크게 문제삼을 수 없는 노래들, 이른바 ‘아침이슬’ ‘그건 너’ ‘왜 불러’ ‘고래사냥’ 따위를 금지곡으로 지정하고, 시국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트로트의 여왕 이미자를 장시간 출연금지시킨 야만의 시절에 그들은 어디에 있었나.

 

그것이 도대체 북한 시스템과 무엇이 달랐던 말인가. 이 땅에 북한식 자유억압과 기본권 유린이 스스럼없이 자행돼도 언론은 침묵했다. 똑같은 상황의 북한 집단에 대해선 그토록 증오와 저주를 퍼부으면서 내부의 모순은 침묵하거나 동조했다. 물론 이익을 챙기며 사세를 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더 타락했는가.

    

보수세력 이중성

 

자유한국당의 태도를 보면 그들의 이중성이 더 뚜렷하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근혜 정부를 승계하면서 온갖 역사퇴행과 기본권 유린, 반칙, 군림, 오만을 저지르며 권력을 유지해온 그들이 북한 인권을 비판하고, 북의 체제를 비판한다. 우리 내부의 독재체제가 숨막혔을 때 국민을 쪄눌렀던 세력들이 말이다. 북의 인권을 말하려면 지난날의 자기 과오를 먼저 반성하고 나서는 것이 설득력이 있다. 적대적 공생을 의식하며, 지금도 그런 향수에 젖어서 공허한 구호를 외치는 것인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줌마부대, 할배부대, **전우회, **기독교회 등 단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내부의 독재체제시절 거기에 부역했던 세력들이 역설적으로 북한민주화를 외친다. 다시말해 우리의 반민주화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북한 민주화를 위해 싸운다는 것이 넌센스라는 얘기다. 그런 외침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과오를 외면한 채 북한민주화를 외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어설프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작가 사르트르의 말이 귀에 쟁쟁하다. 그는 ‘프랑스 자본주의는 비판하면서 구소련을 비판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기자 질문에 대해 “나의 실천 현장은 소련이 아니라 나의 조국 프랑스다. 소련 비판에 나설 경우, 프랑스 자본주의는 괜찮은 것으로 비쳐져 자본주의의 모순, 타락상을 은폐하는 데 이용될 수 있다. 지식인은 결단코 부패한 프랑스 앙시엥레짐(구체제)을 도와주어선 안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생각하는 프랑스 국민은 없다. 오직 프랑스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세계적 지성이라고 추앙해오고 있다.

 

사르트르가 우리나라 사람이었다면, 구세력은 단번에 종북이며, 빨갱이라고 몰아붙였을 것이다. 기득권 옹호자가 될 수 없다는 점을 제시한 것이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빨갱이로 매도되고, 취업길이 막히고, 체포되기도 했다. 이런 논리구조에 대응할 필요도 없지만 지금도 악쓰면 이긴다는 완장부대의 행태가 시중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 세월 반민주 폭압정권에 복무했던 구세력이 북한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북한인권을 거론하는 것은 그들 자유다. 그러나 그들이 북한 민주화와 북한 인권을 위해 투쟁한다면 지난날 자신들이 저질렀던 과오부터 반성하고 출발해야 공명공감한다. 그것이 아니면 가짜다.

 

상식과 합리성

 

인간은 생각보다 합리적이다. 억압에 짓눌려 멋모르고 살던 사람도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차갑게 정신을 차린다. 빌라도 밑의 갈릴리 사람들도 광포한 폭력 앞에서 숨어서 한숨짓고, 흐느꼈지만 결국은 이성사회라는 이상향으로 가는 도정을 의연하게 걸어갔다.

 

폭력과 생떼와 억지와 궤변과 광기가 세상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반드시 정상궤도로 진입한다.

 

그런데 우리의 자칭 보수는 그런 늪에 빠져있다. 그런 관점으로 북한 응원단과 연주단을 본다. ‘#metoo’에서 말하는 ‘마초근성’을 보는 것같아 안타깝다. 그런 시각이 덜떨어지고 옹졸하고 유치하다는 것쯤 알았으면 좋겠다. 상식이 통하는 합리의 무대로 나와야 한다.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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