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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운동’ 정략적 이용 말아야 하는 이유

“사회 전반적인 개혁운동 왜곡 말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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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홍 주필
기사입력 2018/03/14 [11:38]

새로운 문명의 도도한 흐름을 본다. 가히 혁명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것은 누가 주도하는 것도 아니고, 보수 진보, 좌와 우라는 이념적 지형에 따라 이동하는 흐름도 아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흐름이 느린 것 같지만 주도면밀하고 용의주도하게 흘러가고 있다. 그래서 누가 인위적으로 틀어막는다고 해서 막아지는 것도 아닌 것같다. 거대한 강물이 한때는 흐트러진 듯하지만 다시 제 줄기를 따라 제 길을 찾아 흘러가는 모습이다. 바로 Me too(나도 당했어) 운동이다.

 


 

과거 ‘70년체제’는 가고 ‘새로운 70년체제’ 맞는 가치 혁명

정략적 이용하려는 野…여성대하는 태도 심각한 문제 있어

진보쪽에서 발생했다며 좋아하는 홍준표…미투운동 조롱도

권위적인 정치집단·종교집단에서 미투고발 더 많이 나와야

 

▲ 지난 3월6일 오후 홍준표 대표가 자유한국당 전국여성대회에 참석해 ‘미투’운동을 언급했다. <사진출처=자유한국당>

 

미투 운동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다. 그것은 한참 잘못 짚은 진맥이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미투 운동은 좌파(라는 용어도 적절한지 모르지만)에서 일어나고 있다”면서 바람이 더 거세게 불기를 바란다고 독려했다. 그러나 미투운동은 이미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혁명성을 띠고 있다.

 

정략적 미투 사용

 

정략적으로 받아들이는 그 태도가 불순해보인다. 어느 순간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오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그러는지도 불안해보이기까지 하다. 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으로 이어지는 현 보수 야당의 여성에 대한 태도, 즉 성희롱 성폭력의 역사적 연원을 따지면 그들 역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문제는 보수 진보, 좌와 우의 문제가 아니다. 상급자와 하위자, 지배자와 피지배자, 힘 가진 자와 약한 자의 계급성에서 온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것이 장구한 세월 누적되어 왔던 것이고, 문화가 되었던 것이고, 남성성의 상징인 양 오도돼왔던 것이고, 그래서 남성들의 일상적 일탈행위로 당연한 듯이 받아들였을 뿐이다. 당한 사람의 인격은 여기에서 아예 도외시되었다.

 

왜 그랬나. 지위가 약한 여성이 진실대로 고백할 수 없는 환경, 즉 남성 지배문화의 강력한 힘 때문이다. 그들은 생사여탈권을 쥐었다. 먹고 사는 문제에서부터 좋은 보직 전보와 진급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틀을 꽉 쥔 상태에서 약자(여자)는 꼼짝할 수 없는 사회적 식민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스스로를 자책하며 한숨과 체념으로 숨어버렸다.

 

강간당한 여자가 피해를 호소하면 불이익이 그 당사자에게 되돌아온다. 빕줄이 끊어지고, 좌천되거나 도리어 행동거지가 칠칠치 못하다는 비아냥이 돌아온다. 이런 이중 고통이 입을 다물게 하고, 체념과 우울과 고통 속에서 망각만이 사는 길인 양 체념하고 살아왔다.

 

고발하는 자체가 냉대받고, 사회로부터 매장당하니 어떻게 할 것인가. 사회구조의 틀은 그렇게 견고하게 짜여져 있는데 말이다. 오히려 여자가 오죽 칠칠맞았으면, 여자가 야한 옷입고 다니더라니, 여자가 꼬리치고 다니니 그렇지, 여자가 헤퍼보이더라니, 여자가 맛있게 보이더라니.... 이런 말까지 예사로 듣는다. 이런 식으로 매도되었다. 그중 좀 대접받는 충고라면 잊어라, 세월이 약이야, 까발리면 너만 손해야, 그러니 없는 일로 여겨라, 미친놈한테 당했다고 편하게 생각해라, 그것이 너를 위한 거야...

 

하지만 없는 일로 한다고 해서 없어지나. 엄연히 자신의 몸속에 굴욕스런 남자의 탐욕의 자국이 남아있고, 그것을 견디느라 죽기보다 못한 열패감과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데...

 

그런 면에서 터져나온 Me too운동은 관념이 아닌 현실적 실체로서 고통을 겪은 이들의 저항이자 함성이다. 독재정권 물러가라, 군부정권 물러가라는 투사적 구호보다 절박한 인권운동이다. 절박하게 치밀하게 대한민국 치부의 곳곳을 훑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더욱 현실감있게 다가온다.남성적 위선과 군림, 강압에 대한 저항의 몸짓의 또다른 민주화운동이다.

 

박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는 최근 자신의 sns에 <왜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지냐고?>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홍준표네 여자만세라는 전국여성대회 행사 동영상을 보니,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다. “좌파진영에서만 벌어지고 있습니다” “미투 운동이 더 가열차게 되어서 좌파진영이 더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홍준표(대표)나 그들은 미투를 계기로 잘못된 성문화가 바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니 그들은 안된다. 이 문제는 그릇된 성문화의 문제가 아니다. 끝없이 쏟아지는 여성에 대한 성폭력 사건은 “설걷이는 여자가 하는 일, 그건 하늘이 정한 일이다”에서 비롯된 일이다. 돼지발정제를 먹여서 강간을 모의한 과거를 치기어린 젊은 시절의 무용담으로 지껄이는 따위의 일들. 성적 대상으로 여성을 간주하고, 같은 사람으로 보지 않고, 함부로 대해도 되고, 여자들이 할 일과 남자들이 할 일이 나뉘어 있다고 보는, 지독한 가부장적 질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은 너 때문에 생긴 일이다. 그들은 그런데 왜 이토록 조용할까.

 

사회적 구조적 문제

 

친구가 물었다. 왜 진보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니? 물론 나는 이 일이 이곳과 저곳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사회 여성의 9할이 겪은 일이고, 피해자가 있다면 가해자의 범위도 그만큼 넓은 일이다. 그런데 왜.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소위 진보진영, 좌파진영의 가해자들에 대해서 말할 때, 이걸 지켜줄 사람이 내 곁에 있다는 믿음. 그건 오히려 성찰이 가능하고 반성도 가능하고 변화도 가능하다는 반증이다. #미투는 폭로가 아니라 용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 속에는 용기를 낼, 감히 내 이야기를 들어줄 누구도 없다는 절망이 있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그들은 심지어 여성대회에서 웃고 떠들고 환호하며 미투를 조롱했다. 연회석 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의 웃음소리는 그래서 너무 가슴이 아팠다. 그들 중 가슴을 쥐어짜며 고통에 차서 앉아있을 누군가가 그래서 나는 염려된다.

 

왜, 그렇냐고? 너희들의 범죄와 너희들의 사악함이 용기조차 가로막기 때문이다. 홍준표에게 묻는다. 너는 도대체 누구와 #with_you(함께 해줄게)를 할 것인가. 나는 알지 못하겠다. 내가 만일 세상 끝에 아무도 도와주지 못한 위기에 처해도 너희들과 함께 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면 너희들은 이 사회를, 여성들을 2등 시민으로 만든 주역들이기 때문이다.

 

나이들면서 무언가를 자신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오늘만은 자신도 하고 장담도 하고 책임지겠다. 자유한국당과 그 극우들에 의해 아픈 기억을 가진 누구라도 오십시요. 제가 목숨을 걸고 지켜 드리겠습니다...

 

홍준표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야영수회담을 하기 위해 7일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임족석 비서실장을 향해 "안희정(성폭력사건)을 임종석이 기획했다던데..."라고 음모설을 제기했다. 이는 중대한 문제가 아닐수 없다. 그래서 그 근거를 대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사로 돌아가서 '농담'이었다고 뒤로 물러섰다. 입의 가벼움을 탓하기 앞서 황당하다. 피를 토하듯 어렵게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의 진정성을 '기획'과 '음모설'로 묶었으니 그 여성을 두번 죽인 셈이 되었다. 이토록 남성의 군림의 태도는 어제오늘 비롯된 것은 아닐 것이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 만 70년이 흘러온 2018년 현재까지 이 나라를 주도해온 세력은 현 자유한국당 세력이다. 자유당-공화당-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이 과정에서의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기보다 일종의 괴물국가였다.

 

이승만 권위주의 정권을 시작으로 군사독재정권, 이명박근혜의 타락한 극우정권의 야수성과 야만성, 가부장적 권위, 남성주의의 마초근성들이 산업화라는 구호 아래 착취와 억압의 구조로 오늘에 이르렀다. 돈과 지위와 권력으로 동물적 본능과 남성적 야수성을 드러내고 여기까지 흘러왔다.

 

1987년 6.10항쟁을 통해 민주화를 거쳐왔다고는 하지만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뒤집은 이명박근혜 보수 우익정권에 의해 오히려 국격이 무너졌다. 타락한 나라는 나아진 경제형편을 부적처럼 달고다니며 남성적 지배문화를 향유하고, 군림과 호령 가운데서 탐욕과 반칙이 횡행했다. 그 중심 세력이 자유한국당 세력이다.

 

프랑스 혁명이 단 한번에 성공하지 못한 역사에서 보듯, 반동의 역사가 더 악랄하고 천박하게시민의 목을 쥐어왔다. 그에 대한 역반동으로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마침내 Me too운동이 일어났다. 정반합에 의한 합리적 물줄기를 잡아나가는 새로운 혁명의 물줄기를 대한민국의 현장에서 다시 목격한다.

    

정략대결 피해야

 

미투 운동은 더 이상 굴욕을 감내하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용감한 항명이다. 전엔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지만 이제 당당히 맞서 지배문화에 도전장을 냈다. 자각과 각성을 통해 나온 것이지만 더나은 세상을 열망한 나머지 더 이상 남성의 지배문화에 인간의 존엄을 빼앗길 수 없다는 몸부림이 되었다.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성을 지지하고 지원하겠다는 뜻의 With you 운동도 마찬가지다. 더 이상 당한 사람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연대의식이다. 공감과 연대를 통해 기존의 낡은 질서와 문화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투운동은 더 품질좋은 민주주의로 가는 도정이다. 지나온 낡은 70년체제를 교체하겠다는 혁명이다.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차이가 차별로 가지 않도록 하는 민주적 사고와 행동을 하자는 자각혁명이다. 이것을 정치적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정치세력은 반성하고 겸손해야 한다.미투에 자유롭지 못한 세력이 좌파 운운으로 매도하는 것은 미투운동을 모독하고 자기부정을 할 뿐이다. 이것은 좌우 진영 대결이 아니다.

 

이 물결은 더 도도하게 흘러가야 한다. 권위적이고 독선적이며 복종만을 강요하는 정치집단, 종교집단에서 미투 고발이 더많이 나와야 한다. 위선적인 곳일수록, 음험한 곳일수록 그것은 더욱 암덩어리처럼,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다.

    

khlee054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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