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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의 시작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도 남성과 동등한 권리 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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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기자
기사입력 2018/03/08 [16:22]

우리나라에서는 주목하는 날은 아니지만, 과거 ‘사회주의 국가’를 중심으로 성대하게 보내는 날이 바로 ‘여성의 날’이다.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은 지난 1908년 미국의 1만 5000여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정치적 평등권 쟁취와 노동조합 결성,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날을 기념해 제정한 날. 문화어로는 국제부녀절이라고 하며 영어로는 International Women's Day(세계 여성의 날)라고 한다. 이날은 여성의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업적을 범세계적으로 기리는 날이다. 정치적 행사로 시작된 이 날은, 현재는 세계 여러 나라의 문화 속에 녹아 들어간 상태다.

 


 

여성 노동자의 평등·노동조합 결성·임금인상 시위 시초

우리나라는 성대하게 기념하지 못해…북한은 대형행사

차별적 관행뿐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 목표한 페미니즘

‘성평등’보다 ‘여성만을 대변한다’는 부정적 인상 문제

 

▲ 현대 사회로 오면서 전통적인 성역할에 대한 의문점을 여성들이 가지게 되었고, 이는 각종 페미니즘 운동으로 확산되게 된다. <사진출처=pixabay>

 

지난 1908년 3월8일, 미국 뉴욕의 러트거스 광장에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여성들의 수는 무려 1만5000여명에 달했다.

    

세계 여성의 날

 

“We want bread, but roses, too!” 여성들의 목소리가 광장에 울려퍼졌다.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빵·생존권)를 원하지만 인간답게 살 권리(장미·인권)도 포기할 수 없다”는 주장이었다. 자매애로 연대한 여성들의 얼굴은 기쁨으로, 벅찬 감동으로 달아올랐다.

 

이들은 10시간 노동제와 안전한 작업환경 마련, 참정권 등을 요구했다. 또 모든 성이나 인종, 재산, 교육 수준 등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역사적인 여성 노동자 대투쟁을 기념하기 위해 2년 뒤인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2차 여성운동가대회에서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의 제창에 따라 참가자들은 ‘세계여성의날’ 제정을 결의했다.

 

코펜하겐 대회에서 한 여성 노동운동가가 남긴 말은 깊은 울림을 줬다. “만약 우리 여성들이 생활비를 벌기 위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다면, 만약 우리가 남성들과 같은 일을 하고 같은 임금을 받을 수 있다면, 만일 여러분이 여러분의 조직을 만들어 노동조합에 들어갈 수 있다면…. (중략) 오늘날 우리가 모든 투표에 참여할 수 있다면, 우리가 정당과 공공기관에 들어가기 위해 경쟁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우리의 성(Sexuality)과 수태를 조정할 결정권이 있다면, 이 모두는 바로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성 노동자 대투쟁 후 국제적인 연대 운동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1915년 멕시코와 노르웨이에서 일어난 1차 세계대전 반대․물가안정 운동, 오스트리아·에스파냐에서 일어난 군부독재 반대운동, 43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무솔리니 반대시위를 비롯해 79년 칠레의 군부정권 반대시위, 81년 이란 여성들의 차도르(아바) 반대운동, 88년 필리핀 독재정권 타도 시위 등이 대표적이다.

 

유엔은 1975년 3월 8일부터 이날을 국제기념일로 제정했다. 세계 각 국에서 3·8세계여성의날 기념대회가 이어져온 가운데 한국에서도 1985년부터 매년 3월 8일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한국여성대회가 열리고 있다. 기념식과 여성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 다양한 행사가 마련된다. 소외돼온 여성노동 문제에 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여성고용·실업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유엔을 포함해 전 세계가 함께 하는 여성의 날은 지난 1910년 독일의 노동운동 지도자 클라라 제트킨이 제창했는데, 세계여성의 날을 이날로 정한 것은, 1857년과 1908년의 3월 8일에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근로여성의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지위향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1857년 뉴욕시의 섬유·의류 공장 여직공들이 작업조건 개선과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가두시위을 벌여, 진압과정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고, 1908년에는 수천 명의 미국 봉제산업 여종업원이 미성년자 노동금지와 여성참정권까지 포함한 요구조건을 내세워 시위를 벌였다.

 

그 후 여성의 날이 세계 역사에서 가장 무게감 있게 다가온 때는 역시 1917년 러시아에서였다. 여성의 날을 맞이하여 페트로그라드를 행진한 푸틸로프 공장의 여성노동자들을 시작으로 마침내 300년간 이어져온 로마노프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소비에트 연방으로 가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여성의 날은 유래가 유래인만큼 주로 구 공산권 국가들에서 더 중요시 여긴다. 체코에서는 공산정권 시기 3월 8일마다 대대적으로 소련식 군중대회를 했었는데, 민주화된 이후에는 구정권의 상징으로 여겨져 기념일에서도 빠지게 되었다.

 

몇몇 국가에서 이 행사는 원래의 정치적 색채를 잃고, 어머니날이나 밸런타인 데이처럼 남성의 여성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행사로 전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세계 여성의 날은 여전히 인권 등의 정치적 문제를 중심 주제로 삼고 있으며, 국제적인 여성들의 투쟁에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자각을 잘 드러내주는 행사로 자리잡고 있다.

 

또한 많은 국가가 3월을 봄의 시작으로 여김에 따라, 세계 여성의 날은 봄철의 첫 번째 축제로 치러지기도 한다.

    

▲ 3월8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다. <사진출처=다음 블로그 캡처>  

 

한반도 여성의 날

 

우리나라에서는 독재를 하며 여러가지 사회 운동에 대한 탄압적인 정책을 유지했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집권 시절의 세계 여성의 날은 공개적으로 진행되지 못하고 뜻있는 소수에 의해서만 치러지는 작은 행사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은 1985년에 가서야 일부 해소되었는데, 그때서야 비로소 3월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공개적으로 기념할 수 있었다.

 

1984년부터 매년 3월 8일을 전후해 한국여성노동자회협의회·전국여성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국여성대회를 개최, 기념식과 여성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의 행사를 한다. 또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당면요구에 대한 확인 결의 및 단결, 소외되어 있는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 형성, 여성고용·실업문제 해결 등 여성과 관련된 다양한 행사를 개최한다.

 

예를 들어 1994년과 1998년에는 고용안정과 사회적 평등, 1999년에는 고용안정과 조직확대, 2000년에는 여성노동자 조직확대와 비정규직 여성 권리확보 등을 주제로 전국 또는 한국여성노동자대회를 개최하였다.

 

명목상 공산주의 국가인 북한에서는 남한과는 달리 여성의 날이 꽤 인지도가 있는 날이라고 북한이탈주민들이 증언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에서는 3.8 국제부녀절이라고 부르는 이 날 만큼은 여성이 굉장히 대우받는다고 한다. 평양에서는 옥류관을 비롯한 유명 음식점에서 여성 고객을 위한 특별 메뉴나 서비스를 내놓기도 하며, 이런저런 예술단들이 축하 공연을 개최하기도 한다.

 

한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에서 이날 여자들은 회사에 출근은 하지만 집에서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안한다”면서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고 아침 밥상까지 남편이 차려준다”고 말했다. 일부는 일부러 이날까지 빨래를 잔뜩 쌓아놓기도 한다는 후문도 있다. 직장에서도 남자 직원들이 이날 만큼은 여성 직원들에게 하다 못해 양말 하나라도 선물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지난 2012년 국제부녀절은 김정일 사후 100일 동안 일체의 음주가무를 자제해야 했음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성대하게 관련 행사들이 개최됐다. 이날 평양대극장에서 은하수관현악단을 중심으로 한 축하 공연이 열렸는데, 이 공연은 김정은이 직접 보러 왔기 때문에 공연 직후 전국에 녹화 방송되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무대에서도 ‘장군님 못가십니다’며 울고불고 하던 예술인들이 여유있게 미소까지 띄우고 연주하는 진풍경을 보여줬고, 객석에서 리춘히나 오극렬 같은 유명 인사들이 춤을 추거나 무대에 불려나와 노래를 부르는 등의 모습도 연출돼 화제가 됐다.

    

여성과 페미니즘

 

이처럼 여성의 날은 평소 상대적으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고 우대하자는 취지로 기념하고 있다. 최근 과거에 비해서는 여성인권이 올라갔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남성 우월사회의 장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나마 이를 쟁취하기 위한 여성주의(페미니즘) 투쟁도 장기간 계속되어 왔다.

 

페미니즘은 여성주의/여권주의를 뜻하는 단어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권리와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상을 말한다. 20세기 초, 여성 참정권의 인정을 기반으로 시작되어 여성의 사회적인 이미지와 권리를 남성과 동등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성의 권리 확장과 성차별적인 대우의 타파를 통해 여성해방과 성평등을 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대표적인 초기 사상가중 하나인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는 저서 <여권의 옹호>에서 계몽사상의 모순과 한계인 남성 편향성을 보완하고 극복하려는 비판적 성찰 끝에 여성의 역할을 사회적 경제 활동과 정치 참여로까지 확대시키고, 남녀의 법적·사회적 평등을 요구했으며, 나아가 남녀 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 내포되어 있는 예속과 모순을 해결할 사회 질서의 재편을 주장하고 있다.

 

근대 초기부터 지금까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 참정권, 투표권, 여성이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 여성이 남성과 법적으로 동등한 지위를 획득할 권리, 아동과 노약자 보호, 성폭력 예방, 올바른 성교육, 환경보호, 사회복지, 노동환경 개선 등 폭넓은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 냈다.

 

학계에서는 학제 간 연구의 일환으로 여성학 협동과정 등의 정규과정을 통하여 활발하게 탐구되고 있다.

 

페미니즘의 탄생은 계몽주의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 많은 계몽주의자들은 여성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면서 무시했지만 일부 계몽주의자들은 이때부터 계몽주의에 입각해 여성의 권리 향상을 주장해왔다. 데카르트의 직계 제자들은 여성을 남성에 종속시키는 사회 제도는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유명한 계몽주의 철학자인 콩도르세도 인류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주장하며 실제로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했다. 이 움직임들은 당시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으나 뒤이은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형성에 기여하게 된다.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쳐서, 투표권, 참정권, 취업권, 재산권 등 법률적 권리의 획득과 관련된 투쟁. 특히 1890년에서 1920년 사이에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 일어났던 여성 참정권 운동이 중심이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해리엇 밀 등이 이때의 인물이다.

 

당시 여성들의 숙원이었던 여성 참정권을 얻어내고 여성들의 권리가 많이 신장되는 쾌거를 이룩하였다. 한편 미국에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금주법 제정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한편 공리주의 하면 떠오르는 존 스튜어트 밀도 이 중 하나이다. 이들의 사상을 종합해서 흔히 ‘자유주의 페미니즘’으로 불린다.

 

1960년대~1970년대에 걸친 운동으로, 레디컬 페미니즘이 그 중심이 된다. 단순히 일할 권리만이 아니라 직장에서의 평등. 그리고 남성 유명 대학에 입학할 권리, 중절합법화와 시민권 운동의 일환으로 행해진 운동이다. 차별적 관행뿐만 아니라 가부장제 철폐를 목표로 하는 레디컬 페미니즘 계열이 주가 된다.

 

제2기에 이어 보다 여러 분파로 나누어지게 된다. 이 시기부터 ‘여성주의’의 범위에서 벗어나 서구권, 백인, 중산층 여성 등의 권리뿐만 아니라 제3세계, 제 3, n개의 성 등의 담론에 도달했다. 즉 소위 '여성문제'라는 것이 대체 어디서 어디까지로 규정되는지 의문이 일었고, 학계의 논의가 진전됨에 따라 여성과 여성문제를 일반화된 범주로 인식하는 것은 오류라는 합의에 이른 것이다.

 

예컨대 같은 여성이라도 무급가사노동에 종사하는 30대 히스패닉 여성과 고소득 전문직을 가진 50대 백인 여성의 삶의 양식은 크게 다르다. 이들이 겪고 있는 삶의 문제를 모두 ‘여성문제’라는 프레임에 끼우는 것이 아니라 n개의 성, 내지는 교차성(Intersectionality) 등의 개념을 통해 좀더 넓은 범위에서 성 문제에 접근하고자 하는 것이 현대 페미니즘 학계의 주된 경향이다. n개의 성에는 생물학적 남성과 그 속의 수많은 젠더, 섹슈얼리티가 모두 포함된다. 요컨데 현대 페미니즘은 여성만이 아닌 다른 소수성에 대해서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 메갈리아, 워마드 등 극단적으로 왜곡된 모임으로 인해 남성은 물론 여성들까지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게 됐다. <사진출처=구글 이미지 검색>   

 

페미니즘 위기?

 

이같은 '페미니즘' 사상의 이름이 femini- 즉 여성의- 를 포함하기 때문에 ‘성평등’보다도 ‘여성만을 대변한다’는 인상을 준다는 사실은 페미니즘 운동권 내외부에서도 제기된 문제로, 명칭에 대한 논쟁이 지속되고 있다. 즉, 굳어진 명칭을 계속 쓸 것이냐, 새로운 대체어를 만들 것이냐에 대한 의견 차이다.

 

페미니즘 명칭의 존치를 주장하는 의견은, 명칭에서 femini를 제외하려는 시도가 여성에 대한 문제를 감추고 근본적 해결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말한다. 또한 과거에 비한다면 여성의 권리가 향상된 것은 맞지만, 아직 그 의의를 완전하게 달성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에, 명칭을 바꾸는 것은 이르다.

 

반면 페미니즘 명칭의 대체를 주장하는 의견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남성/여성만이 아닌 시스젠더 등 성을 구분짓는 의미가 모호해지고 있으며, 그 외의 성 또한 차별 받는 것이 현실인데, femini의 뉘앙스로 인해 ‘여성우월주의’, ‘남성 배척’ 등으로 이해 및 변질된다는 것이다.

 

물론 페미니즘 내에서 성 평등을 지향하는 요소나 뉘앙스가 있다고 하지만, 페미니즘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경험을 통해, 여성이라는 성별이라는 이유로 받는 불평등함의 원리와 원인을 이해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본다면, 여성주의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한 번역이다. 단어의 형태도 여성을 뜻하는 접두사가 들어가서 Feminism이다. 실제로 오늘날의 대다수 페미니즘 단체가 남성이 배제된 여성 중심적 행적을 보이는 것 또한 사실이다.

 

다만, 페미니즘 운동 초기에 추구하던 여성 참정권, 사회 참여 등의 진전과 함께 최근에는 생물학적 성에 기인한 억압과 차별에 대한 폐지와 양성의 동일한 권리, 기회를 옹호하는 입장으로 성평등주의와 혼용되기도 한다.

 

즉 페미니즘은 성평등주의 그 자체는 아니지만 성평등주의의 입장을 많은 부분에서 수용하려고 노력한다. 엠마 왓슨의 UN 여성의 날 스피치 역시 같은 관점을 반영했으며, 디즈니 또한 남성에 대한 차별을 이야기했고, UN의 여성 권리 운동 역시 성별, 종교, 인종 등으로 인한 차별의 타파를 추구하고 있다.

 

물론, 모든 페미니즘 분파가 모든 차별의 타파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과하게 변질되면 국내의 ‘메갈리아’처럼 여성 권리를 위해 남성, 장애인, 노인, 어린이, 성소수자 차별과 비하를 용인하기도 한다.

 

이에 반대하는 안티페미니스트도 존재하며, 비슷하게 레디컬 페미니즘, 여성우월주의, 남성혐오 등 페미니즘의 부정적 행태에 질린 온건 페미니스트들이 분파해 이퀄리즘을 주장하는 움직임도 최근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페미니즘 관련 각종 논란으로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동시에 커짐으로서 양 측 사이의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점은 향후 여성주의 운동에 있어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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