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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까지 부르는 간호사 ‘태움 문화’

‘백의의 천사’, 후배에게는 ‘악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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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기자
기사입력 2018/02/24 [20:00]

간호사 특유의 ‘태움’ 관행 때문에 서울의 한 대형병원에서 입사 6개월도 안 된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간호사 근무 환경과 교육 방식 전반에 대한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태움이란 간호사 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직장 괴롭힘을 지칭하는 은어다.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표현에서 유래됐다.

 


 

스스로 목숨 끊은 대형병원 간호사…‘태움’ 의혹 제기

고질적 간호계 폐습…개인적 문제보다는 시스템 문제

사수도 괴로워…과도한 업무에 감정적 방향으로 표출

인원 늘려 업무 강도 낮추고 실습 전문인력 운용시급

 

▲ 간호사의 병원 내 괴롭힘인 ‘태움’ 문화에 대한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사진출처=SBS 뉴스 캡처> 

 

설 연휴에 서울의 한 대학병원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했다. 간호사 간 위계를 바탕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을 뜻하는 ‘태움’ 문화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와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목숨 끊은 간호사

 

송파경찰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입사한 신입 간호사 A씨가 설 연휴 첫날인 지난 2월15일 오전 10시40분 쯤 자신이 근무하는 대학병원 인근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A씨가 아파트 고층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고 자살 동기 등을 조사 중이다. 현장에서 A씨의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A씨 남자친구인 B씨는 한 간호사 커뮤니티에 글을 올려 “A씨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증폭됐다. 그는 “간호부 윗선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태움’이라는 것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라며 “평상시에도 (A씨가) ‘출근하기가 무섭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내지?’라는 말을 했다”고 밝혔다.

 

A씨는 연휴 직전인 지난 2월13일 저녁 근무 중 중환자실 환자의 배액관(수술 후 뱃속에 고이는 피나 체액을 빼내는 관)이 망가지는 일이 발생해 극심한 스트레스를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일로 다음날인 14일 수간호사와 면담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A씨의 남자친구는 “수간호사 선생님과 사수를 보러 간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는데 만나서 어떤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안심을 시키기보다는 또 혼내지 않았을까”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병원 관계자는 “상담 과정에서 수간호사가 소송에 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업무를 볼 수 없을 정도로 걱정이 커 보여 병원에서 3일 간의 휴가를 줬다”며 “상담을 마친 후에도 불안해 하는 A씨를 보자 사수가 저녁을 먹인 후 기숙사까지 데려다줬다는 게 조사 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다른 대학병원과는 다르게 여러 학교 출신 의료진들이 섞인 우리 병원은 선후배 개념이 느슨한 편이라 태움이 심하지 않다는 말을 직원들로부터 들었다”며 “다만 선배의 어투를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다르게 느낄 수 있겠다”고 덧붙였다.

    

태울 정도로 갈군다

 

이같은 간호사 자살 사건이 간호업계의 고질적인 ‘태움’문화와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뒤 고질적인 폐습이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간호사들의 ‘태움’ 문화와 연관성이 있는지는 경찰 수사과정에서 밝혀져야겠지만 이 기회에 근본 문제를 따져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게 간호업계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문재인 대통령님 간호사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아 주세요’라는 청원글에 따르면 “중환자실은 늘 인력이 부족하다”며 “중환자실은 (올림픽) 금메달만큼 귀하고 소중한 인간의 생명을 위해 사투를 벌이는 곳이지만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신규 간호사에게 오랜 경력의 간호사와 똑같은 수의 환자를 담당하게 한다”고 비판했다.

 

태움에 대해서는 “몇몇 인성이 나쁜 간호사들 때문이 아니라 의료시스템이 간호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기 때문에 존재하는 문화”라고 꼬집었다.

 

청원자는 “병원의 간호인력 보충을 법으로 강제해달라”며 “밥 한끼 먹지 못하고 화장실 한번 가지 못해서 환자보다 앓고 있는 간호사에게 단지 ‘친절하라’고 강제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면서 “병원에서 간호사 1명당 보살피는 환자의 수를 줄이는게 최선의 해결책”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신규 간호사들은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오는 업무 스트레스에 태움까지 더해져 이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난 2016년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경력 1년 미만 간호사의 평균 이직률은 35.3%에 달했다. 3명 중 1명은 1년을 채우지 못하고 병원을 떠난다는 얘기다.

 

대다수의 간호사들은 태움문화가 ‘시스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대개 신규 간호사는 선배 간호사인 프리셉터(preceptor·사수)와 항상 함께 다니면서 일을 배우는데, 절대적으로 간호인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을 가르친다’는 행위 자체가 조직에 부담으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실제 2016년 한국직업건강간호학회지에 실린 ‘간호사의 태움 체험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선임 간호사 역시 신규 배치되는 간호사와 근무하는 데 대한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연구에 참여한 한 선임 간호사는 “일을 잘 모르는 신규와 일을 하면 신규 일을 내가 다 커버해주면서 해야 하니까 나도 너무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간호사의 업무 자체가 환자 안전에 직결되므로 엄격한 교육과 역량 강화는 불가피하지만 현 태움이 과도하게 감정적인 방향으로 표출된다는 지적도 있다. 옷 입는 걸 지적하거나, 선임의 개인적인 스트레스를 푸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신규 간호사가 병원에 들어가면 오리엔테이션을 거쳐 현장에 투입된다. 대형 종합병원(300병상 이상)에선 보통 프리셉터와 2인 1조로 환자를 돌본다. 숨진 A씨와 같은 병원에서 일한 간호사는 “신규 간호사가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사수의 일이 두 배가 되기 때문에 업무 스트레스가 심하다”고 증언했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의 10년차 간호사는 “신입 때 사수에게 등 때리기, 귀 옆머리 잡아당기기, 독방 가두기 등을 당했다. 부모님에 대한 모욕적인 말도 예사로 들었다. 그나마 나는 나은 편이었고 동료 중엔 쇠로 된 차트로 머리를 맞은 애들도 있었다”고 말했다.

 

경기도 대형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일했던 또 다른 간호사도 지난해 태움을 견디다 못해 2년 만에 간호사 일을 그만뒀다. 그는 “‘사람 생명을 다루는 일이니 깐깐하게 교육해야 한다’는 미명 하에 인격적 모욕도 예사”라고 털어놨다.

    

▲ 간호사의 태움문화는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분석이 대다수다. <사진출처=SBS 영상 캡처>

 

열악한 처우 문제

 

이같은 태움문화에 대해 전문가들도 역시 간호업계의 열악한 노동환경과 병원의 지원부족, 허술한 교육시스템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서울시간호사회 관계자는 “지난 2005년 화순전남대병원에서 간호사 2명이 잇따라 자살한 지 햇수로만 벌써 13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랑 똑같다. 단순히 한 병원의 조직 문화가 아니라 허덕이는 간호인력, 처우, 실습병원 부족에 따른 미숙련 등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실습 미비 등으로 완벽히 준비되지 않은 간호사들이 현장에 바로 투입되면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이 때문에 금세 병원을 떠나면서 남아있는 사람들이 살인적인 노동 강도에 노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규 간호사에 대한 교육 기간을 확충하고 처우를 개선하는 등 개인이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에 노출되지 않도록 다양한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2월15일 숨진 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근무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린 환자의 상태가 언제 어떻게 급변할지 모르는 곳이지만 대형병원에서도 간호사 1명이 환자 2∼3명을 돌보고 있다. 대부분 선진국은 간호사 1명에 환자 1명을 배정한다.

 

태움까지 불러오는 혹독한 도제식 교육은 이론과 현장의 차이 때문이다. 간호학과에서도 현장실습을 하지만 병원마다 진료 시스템이 다르고 현장 대처 방법에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취업 후 실제로 업무에 투입되면 선임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이론과 현장이 매우 다르기 때문에 신규 간호사 입장에서는 프리셉터가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사는 국가고시에서 임상술기 시험을 치르지만 간호사는 그런 게 없다”며 “실습교육 강화도 태움 문화를 없앨 수 있는 한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병원 내에서 수습기간을 3개월, 6개월 등으로 명시한 뒤 정규 인력으로 투입하지 않고 배우는 기간으로만 해야 한다”며 “정부가 간호사 교육에 따른 인건비나 신규 인력 훈련을 위한 별도 수가를 지급한다면 병원의 부담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또 다른 전문가도 “간호인력 배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학교가 실습병원을 갖추지 않은 채 강의에만 의존하는 등 실습이 미비한 편”이라며 “실습 강화 등을 통해 현장에 빨리 적응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간호사 자격증을 보유한 유휴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마련돼야 한다고 봤다. 그는 “현재 간호사 면허를 가진 사람은 30만명에 이르지만 실제 현장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13~14만 명에 불과하다”며 “우수한 간호사가 의료현장에 계속 남아있을 수 있도록 처우를 개선하고, 일을 쉬더라도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는 일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인권침해 최전선

 

실제로 기관에서 조사한 ‘간호사 인권 침해 실태’에서도 그 심각성이 수치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간호사 10명 중 7명은 노동 관계법 위반을 경험하는 등 근로 인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간호사 10명 중 4명은 최근 1년 동안 선배나 동료에게 심한 괴롭힘을 당하는 등 ‘태움’ 문화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한간호협회는 보건복지부와 공동으로 지난해 12월부터 진행하고 있는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 조사’ 1차 조사 결과를 지난 2월20일 발표했다.

 

조사 결과 간호사 중 근로기준법 등 노동 관계법 위반을 경험한 비율이 69.5%나 됐다. 구체적으로 ‘근로자가 원하지 않는 근로를 강요하거나 강제로 연장근로를 한다’는 응답이 5059건이다. 시간 외 수당 미지급(2037건), 연차 유급휴가 제한(1995건) 등도 적지 않았다. 생리휴가 제한(926건), 유급 수유휴가 제한(750건), 육아휴직 복귀 시 불이익(648건), 임신부 동의 없이 강제 야간근로(635건) 등 모성보호 관련 불법·탈법 행위도 빈번했다.

 

한 신입 간호사는 “새벽 4시에 출근해 오후 6~9시에 퇴근하는데도 선배가 절대로 추가수당이나 특근장부를 쓰지 못하게 한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간호사는 “‘임신 시 단축 근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간호부에서 전했다”고 토로했다.

 

‘폭언, 험담, 따돌림 등 괴롭힘을 당했다’는 비율은 40.9%였다. 괴롭힘 가해자는 신입을 교육하는 프리셉터(사수) 등 선배 간호사가 30.2%로 가장 많았다. 다음은 동료(27.1%), 간호 부서장(13.3%), 의사(8.3%)였다. 성희롱이나 성폭행 경험은 18.9%가 호소했다. 성폭력 가해자는 환자가 59.1%로 절반을 넘었다. 간협은 지난 2월13일 문제의 심각성이 높은 사례 113건을 추려 고용노동부에 접수했다.

    

penfree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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