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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주름잡는 LG전자 TV의 시초 ‘VD-191’

‘반세기 전부터 시작된 금성사의 TV 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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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기자 2017-12-08


LG전자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상품이 무엇이 있을까? 다양한 대답이 나올테지만, 높은 비율로 ‘TV’가 언급될 것이다. LCD 패널 라이벌이자 국가대표기업인 삼성전자와 엎치락 뒷치락 거리며 세계 TV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LG전자의 TV는 갑작스레 유명해진 게 아니다. 수십년 간의 시행착오와 기술개발 노하우가 축적되온 결과물인 것이다. 이같은 LG전자 TV제품의 시발점은 바로 1966년 출시한 ‘VD-191’이다.

 


 

반 세기 전 국내 최초 출시된 TV…고가 불구 돌풍

역사 가치 인정 ‘등록문화재’ 등극…반영구 보존돼

 

▲ 금성 텔레비전 VD-191. <사진제공=문화재청>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오늘날 글로벌 TV시장을 주름잡고 LG전자. LG전자가 세계 TV시장을 주름잡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반세기에 가까운 역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58년 10월, 금성사라는 이름의 전자 회사가 설립되었다. 설립자는 연암 구인회 회장이다. 1년 뒤 금성사는 자사 최초 제품인 A-501 라디오를 개발, 생산했으며, 1960년 선풍기, 1965년 냉장고를 만들며 명성을 쌓아 갔다. 그리고 1966년 8월 대한민국 최초의 흑백텔레비전 VD-191를 생산하며 대한민국의 대표 전자 회사로 자리잡게 된다

    

국내 최초 TV

 

지난 1960년대 ‘박치기 왕’ 김일 선수의 경기를 보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삼삼오오 TV가 있는 집으로 모이던 시절이 있었다. TV는 부의 상징으로 TV가 있는 집의 아이는 또래들 사이에서 골목대장으로 통했다. 당시 TV는 문명의 이기를 넘어 권력 그 자체이기도 했던 것이다.

 

나무상자에 자물쇠까지 매달아 ‘철통보안’이 유지됐던 당시 TV의 이름은 ‘VD-191’이다. 지난 1966년 8월 금성사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흑백 TV로 ‘진공관식(Vacuum Desk Type) 19인치 1호 제품’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VD-191은 12개의 진공관으로 능동회로를 구성하여 증폭·검파·동기분리·음성 및 영상신호 증폭 등의 기능을 가졌다.

 

수동으로 채널을 선택하는 기계식 튜너를 사용하였고, 콘크라스트 조정 단자와 볼륨 조정 단자가 앞부분에 배치되어 있다. 또한, 제품에 따라 받침다리를 설치하여 고급 가구의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초호화 가전제품이었다.

 

금성사(현재 LG 전자)가 1968년 11월 동아일보에 낸 광고에 따르면 텔레비전 VD-191을 5개월 혹은 10개월 월부로 구입할 수 있었다. 

 

금성사가 최초 500대로 한정 판매한 VD-191의 가격은 6만3510원. 당시 월평균 소득이 1만2000원, 쌀 한 가마니의 가격은 2500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척이나 고가의 제품인 셈이다. 이 가격 또한 일제, 미제와의 가격 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당초 산출된 8만7683원에서 세금 부분을 인하해 산정한 것이다.

 

VD-191은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금성사는 1963년부터 TV 생산을 계획했으나 곧이어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악화된 전력 사정으로 부품 수입이 난관에 부딪히면서 사업계획이 틀어졌다. 그러나 금성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일본 히타치와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하는 등 사업을 계속해서 추진했다.

 

특히 금성사는 국내 최초의 산업 디자이너로 꼽히는 박용귀씨를 일본으로 보내 노하우를 전수받는데 공을 들였다. 이러한 노력 끝에 금성사는 1655년 정부로부터 TV생산 허가를 얻어낼 수 있었다.

 

당시 금성사가 정부로부터 TV생산 허가를 얻기 위한 과정은 치밀했다. 정부 공보활동의 강화, 국민 경제 발전 및 수출 촉진에 따른 외화 획득, 국민 계몽 등 TV가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긍정적인 면을 정부에 일목요연하게 전달한 것이다.

 

1966년 선보인 금성의 VD-191의 인기는 선풍적이었다. 최초 500대 한정으로 판매되다 보니 추첨제로 판매해야 할 정도였다. 은행창구를 통해 판매된 VD-191의 경쟁률은 20대 1에 육박했으며 할부 판매의 경우 50대 1까지 이르렀다.

 

전 국민의 사랑을 받은 VD-191에 찬사만 이어졌던 건 아니다. 일본과의 기술제휴로 만들어지다 보니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외형적인 부분에서도 상당부분이 흡사해 “히타치 TV를 모방한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 것이다. 또한 TV 밑에 달려있는 다리 또한 한국의 좌식 생활방식에 적합하지 않다는 비판도 일었다.

그럼에도 불구, VD-191은 구입을 위해 자신의 가정에 TV가 없음을 증명해야 TV를 살 수 있는 ‘TV 무소유 우선공급제’가 실시될 정도로 돌풍을 일으켰다.

 

VD-191은 당시 낙후된 국내의 전자통신 기술·산업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뿐만 아니라 산업디자인 측면에서도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한 영상매체 시대로 진입하게 한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도 인정받고 있다.

    

▲ 금성사는 이 당시 쌓아올린 노하우로, 반세기 지난 지금 세계 최고의 디스플레이 회사로 등극하게된다. <사진=구글 이미지 검색>  

 

문화제 지정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문화재청은 지난 2013년 8월 VD-191을 포니 1 등과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2001년 도입된 등록문화재는 보존 가치가 높은 근‧현대 문화유산을 등록하는 제도로 현재까지 약 600여 개가 선정됐다. 등록문화재가 되면 보존 및 수리에 필요한 지원이 제공된다.

 

문화재청은 텔레비전 VD-191의 문화재 등록 사유로 전자통신 기술과 산업의 발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산업 디자인의 역사적 측면에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점을 들었다. 또한, 우리나라가 영상매체 시대로 진입하게 한 토대를 마련한 중요한 문화유산이라고 설명한다.

 

텔레비전 VD-191의 문화재 등록의 의미는 첫 번째 현대적 산업유산이 문화재로서의 지위를 받았다는 것과 두 번째 현대의 동산유물이 문화재의 범주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그리고 번외의 의미로 50·60대에게 그 당시로 추억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유산이 반영구적으로 보존될 수 있다는데 있다.

 

이같은 VD-191의 문화재 지정에, 지난 2013년 8월, LG전자는 과거 향수를 담은 ‘클래식 TV’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화면 해상도는 풀HD 1920x1080, 화면주사율 120Hz 등 최신 성능을 담으면서도 1960~1970 년대 TV 초창기 시절의 디자인을 접목한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클래식 TV의 인기는 출시된 지 50년 가까이 된 VD-191이 현대인들의 향수를 자극했기 때문”이라며 “VD-191의 영향력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LG 전자는 VD-191 이후 국내 최초 컬러 브라운관(1977), 국내 최초 디지털 TV(1984), 국내 최초 완전평면 브라운관(1988), 국내 최초 LCD TV(1999)에 이어 2000년 들어서는 세계 최초 60인치 PDP TV(2001), 세계 최초 55인치 LCD TV(2004) 등을 선보이며 세계 TV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최근엔 스마트 TV, OLED 등 첨단 기술을 접목한 제품을 내놓으며 디스플레이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다.

    

penfree1@hanmail.net

기사입력 : 2017-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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