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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SK의 신의 한 수, ‘도시바 인수전’

뚝심의 역전 승리…“반도체 산업 도약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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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준 기자 2017-09-22


최태원 회장의 무모한 듯했던 뚝심이 성공했다. 일본 전자기업 도시바의 반도체 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SK하이닉스가 최종협상자에 선정된 것이다. 물론 컨소시업 형태로 참여하면서 경영권은 얻지 못했지만, 각종 기술협약 등으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SK하이닉스 자체가 인수이후 업청난 실적을 올리면서 세계 최상위권으로 도약하고 있어, 이번 인수전 참여가 또다시 ‘최태원의 신의 한 수’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인수전 초반 열세 직접 일본 건너가 역전극 ‘진두지휘’ 최태원

도시바 측 변덕으로 불리했으나, 침착하고 일관성있게 대응해

그룹 내 반도체 계열사와 시너지 가능…낸드플래시 도약 계기

메모리 계열사 인수 활발…하이닉스 중심의 수직 계열화 완성

 

▲ 최태원 SK 회장이 진두지휘한 SK하이닉스의 도시바 인수전이 거의 성공단계에 다가왔다. <사진제공=SK 그룹>

 

[사건의 내막=김범준 기자] SK하이닉스가 합류한 ‘한미일 연합’이 지난 9월20일 일본 도시바 반도체 인수자에 최종선정됐다. 이번 인수전에서 승리하기까지 최태원 SK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또 한번 발휘됐다. ‘미일 연합’에 합류한 이후에 상황이 수차례 오락가락했지만 최 회장은 조급해하지 않는 특유의 ‘뚝심’으로 인수전을 안정적으로 끌고 갔다.

    

불리했던 인수전

 

일본 현지언론과 로이터 등 복수의 외신들은 지난 9월20일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 부문을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에 매각한다는 방침을 정했다고 보도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도시바는 이같은 결정을 9월20일 밤 공식 발표했다.

 

한미일연합에는 SK하이닉스 외에 미국계 사모펀드 베인캐피털과 일본 국책은행인 일본정책투자은행, 민관펀드인 산업혁신기구가 참여했다. 미국의 애플과 델 등도 막판 합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인수대금은 지난 6월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당시보다 4000억엔(약 4조원) 늘어난 2조4000억엔(약 24조원) 수준이다.

 

초반부터 도시바 인수전은 SK에 불리하게 진행됐다. SK가 1차 입찰에서 제시한 금액은 경쟁자들에 비해 1조원 이상 적었다. 또한 한국이나 중국 등 인접국으로 반도체라는 핵심기술을 유출하는 것에 대해 일본 내 여론이 부정적으로 흘러갔다.

 

최태원 회장은 2차 입찰은 다를 것이라며 의지를 불태운 뒤 조용히 반전카드를 준비했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기자들과 만나 도시바 인수전에 대해 “기업을 그냥 돈주고 산다는 개념에서 더 나은 개념을 생각해서 접근하겠다”며 도시바와 상생하는 인수방안을 암시했다. 이후 최 회장은 직접 일본으로 날아가 도시바 경영진과 면담하며 이를 구체화했다.

 

최 회장은 전환사채(CB) 방식으로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는 인력 구조조정과 기술 유출을 우려하는 도시바 경영진과 일본 정부를 설득하기 위한 최적의 방식으로 '승기'를 잡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6월 초까지 불리하게 끌려가던 상황을 뒤집은 것도 최 회장의 결단이었다. 브로드컴이 막판까지도 인수자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최 회장은 베인캐피털, 일본 민관펀드 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과 함께 ‘미일 연합’에 합류를 결정, 전체적인 판세를 뒤엎었다.

 

고비는 또 있었다. 우선협상대상자에서 밀린 미국 WD(웨스턴디지털)이 소속된 ‘신(新) 미·일 연합’이 소송전을 펼치며 상황이 복잡하게 꼬여갔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이 때도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을 것”이라며 조급해 하지 않되 인수전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도시바는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놓고도 그 뒤 이를 취소하고 새로운 파트너와 협상을 진행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며 안갯 속 형국이 이어졌다. 이때 등장한 것이 애플이었다.

웨스턴디지털, 훙하이정밀공업도 애플에 구애를 보냈지만 웨스턴디지털에 대한 불신이 강한 애플은 한미일 연합을 선택했다. 결국 SK하이닉스에 대한 애플의 신뢰가 인수전의 성공카드로 작용한 셈이다.

    

반도체 사업 동력

 

최태원 회장은 이번 인수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자신이 전략적으로 육성했던 SK그룹의 반도체 사업을 보다 안정적으로 끌고나갈 동력원을 찾게 된다.

 

지난 2004년 그룹 회장을 맡은 이후 최 회장은 통신·에너지·화학 중심의 비즈니스만으로는 성장이 정체할 수밖에 없다면서 주변의 반대에도 하이닉스를 전격적으로 인수했다. 최 회장은 SK하이닉스 인수 이후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리는 한편 인수합병에도 가속패달을 밟았다.

 

SK그룹은 지난해 반도체 제조에 사용되는 특수가스(NF3·WF6·SiH4 등)를 생산하는 SK머티리얼즈를 인수했고 지난해 4월엔 SK에어가스도 가져왔다. 또한 일본 트리케미칼과 합작해 SK트리켐을 세웠고 이후엔 조인트벤처(JV)형태인 SK쇼와덴코를 설립했다. 올해는 반도체용 웨이퍼를 생산하는 LG실트론의 경영권 인수도 발표했다.

 

도시바 반도체 부문 인수는 급속도로 몸집을 불려온 SK그룹 반도체 계열사들과 새로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SK그룹의 반도체사업 확대전략은 현재와 같은 호황기엔 문제가 없지만 불황이 닥치면 수요처가 줄며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이 때문에 SK하이닉스가 지분참여를 하고 있는 도시바가 SK그룹 내 반도체 자회사들의 안정적인 수요처 역할이 되 줄 가능성이 크다.

 

올해 2분기 낸드플래시 시장에서 도시바의 점유율은 삼성전자(38.3%)에 이은 2위(16.1%)였다.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10.6%로 업계 5위다. WD 점유율은 15.8%다. 업계 5위로 낸드플래시 시장 공략이 급선무인 SK하이닉스는 2위 도시바와 손잡게 되면서 기술력과 시장 지배력을 높일 기회를 갖게 됐다. 낸드플래시 메모리에 대한 원천기술을 가진 도시바 반도체와 협업을 통해 특허 분쟁 등도 피해갈 수 있다.

 

산술적으로 인수 이후 ‘SK하이닉스+도시바’가 되면 세계 시장 점유율은 2위인 26.7%로 뛴다. 삼성전자와 합치면 한국의 두 업체가 세계 매출의 65.0%를 가져와 세계 낸드플래시 시장을 휘어잡는 셈이다. 메모리 의존도가 높은 구글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도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전망은 SK하이닉스가 도시바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렸다. 협업이나 공동 연구개발로 기술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나 직접 지분을 갖는 게 아니어서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SK하이닉스는 이번 인수전에 직접 지분을 참여한 게 아니라 베인캐피털이 인수를 위해 세운 특수목적법인(SPC)에 전환사채(CB) 투자 금액 대출을 해주는 형식으로 간접 참여를 했다. 투자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인수가 마무리돼도 지분 구조는 베인캐피털 49.9%, 도시바 40.0%, 일본 기업 10.1%로 일본이 총 50.1%를 확보한다. 산케이신문은 “동종 분야인 SK하이닉스가 앞으로 취득할 수 있는 의결권 비율을 15% 정도로 낮춰 반독점 심사를 오래 끌지 않도록 했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2013년부터 반도체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하며 본격적으로 키우고 있다. 투자규모만 20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한국기업과 2~3년 내 기술격차가 좁혀 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 때문에 도시바의 기술력이 중국 진영인 폭스콘에 넘어갔다면 추격이 더 빨라졌을 수 있다. 폭스콘은 3조엔에 달하는 가장 높은 인수금액을 제시했지만 한미일 모두 중국으로의 기술유출을 우려해 이를 막았다. 최 회장이 그림을 그린 한미일 연합 전선이 각국의 이해관계를 충분히 반영한 ‘적중카드’였던 셈이다.

    

▲ 도시바는 현재 세계 낸드플래시 점유율 2위의 업체다. SK하이닉스는 5위에 머물러 있다.

 

쉽지 않을 협업

 

이제 문제는 도시바메모리와의 전략적 협력관계를 통한 시장경쟁력 강화는 앞으로 얼마나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글로벌 낸드플래시 점유율 2위의 도시바메모리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이라는 낙관론의 한편엔 협업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가 존재한다.

 

도시바와 일본 미에현 욧카이치 공장을 공동운영한 미국의 웨스턴디지털도 만족할만한 수확을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지분을 확보하지 않는 상황에서 도시바의 시장점유율은 남의 집 곳간일뿐"이라며 ”결국 기술협업이나 마케팅 부분에서 얼마나 실질적인 성과가 이뤄지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수전 초반 관측과 달리 도시바메모리 인수 결과가 낸드플래시 시장 구도에 미칠 영향 역시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적잖다.

 

삼성전자가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하는 상황에서 지각변동이라 할 만한 시장 재편이 일어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삼성전자가 4세대 3D 낸드플래시 양산을 넘어 5세대 기술 개발에 나선 반면, SK하이닉스는 최근 4세대 3D 개발에 성공했고 도시바는 아직 3세대에 머문다.

 

하지만 최 회장이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관측이 많다. 도시바가 지난 6월 말 우선협상대상자를 발표한 후 2개월 만에 이를 변경한 전력이 있는 데다, 이 과정에서 다른 측과도 협상을 병행하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로 도시바는 지난 6월 말 SK하이닉스가 포함된 한미일 연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이후 미국의 웨스턴디지털, 대만 훙하이정밀공업(폭스콘) 등과도 매각 협상을 진행한다고 밝히는 등 일관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SK하이닉스는 이날 공식반응을 자제한 채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최종 계약 체결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게 일관된 입장”이라고 말했다.

 

웨스턴디지털의 반발 가능성은 인수가 마무리될 때까지 최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웨스턴디지털은 이번 매각이 동의없이 진행됐다며 매각중단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각국의 반독점심사도 SK하이닉스가 넘어야할 산이다. 도시바 매각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시바의 2강 체제가 가시화되는 가운데 이번 인수전에서 밀려난 중국 등이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 수 있다.

 

일본 현지언론을 중심으로 SK하이닉스가 장래에 취득할 수 있는 도시바메모리 의결권지분이 15%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게 이 때문이다. 반독점심사에 6개월 정도가 걸리는 점을 고려하면 인수 작업은 빨라야 내년 3월 마무리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WD의 소송 이슈가 아직 끝나지 않은 상황이고, 도시바는 여전히 독자 생존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면서 “최종 계약서에 서명을 할 때까지는 인수전이 끝났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 최태원 회장은 SK하이닉스에 대한 투자의지가 매우 크다. 사진은 최태원 회장이 지난 2012년 9월29일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에서 열린 ‘해피토크오픈이벤트’에서 직원들과 회식을 하는 모습. <사진제공=SK 그룹>

 

하이닉스 상승효과

 

이처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일본 도시바 메모리사업부 인수전에서 최종 승리하면, 6년간의 반도체 영토 확장은 화룡점정을 찍을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2011년 SK하이닉스 인수를 시작으로 지난해 반도체용 특수가스 개발 전문업체인 SK머티리얼즈, 올해 초 SK실트론을 연이어 SK그룹에 편입시켰다.

 

SK그룹은 반도체 원료인 ‘웨이퍼’에서부터 특수 가스, 메모리 반도체, 파운드리(반도체 수탁 생산)에 이르기까지 수직 계열화를 이뤘다. 또 SK하이닉스는 도시바 지분 확보로 인해 D램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낸드플래시 분야 경쟁력을 강화할 기회를 잡게 됐다. SK하이닉스는 글로벌 메모리시장에서 세계 D램 점유율 2위, 낸드플래시 점유율 5위를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SK하이닉스는 현재의 영광이 오기까지 회사가 합쳐지고 쪼개지는 등 오랜 세월 여러 번의 부침을 겪었다.

 

SK하이닉스의 전신은 현대그룹이 1983년 설립했던 현대반도체다. 이후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재벌 간 대규모 사업 빅딜이 이뤄지면서 LG반도체(1979년 창립)를 합병했다. 당시 반도체 사업을 포기하라는 정부의 메시지를 전달받은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크게 한탄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현대반도체와 LG반도체의 합병을 통해 탄생한 하이닉스반도체는 그러나 2001년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됐고 2004년엔 비(非) 메모리 사업 부문을 또다시 떼어냈다. 분리된 비 메모리사업 부분이 현재의 ‘매그너칩’이다. 이 회사는 2011년 3월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고 파운드리 분야에서 세계 20위(점유율 0.5%)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11년 SK그룹이 인수해 올해 들어 1·2분기 연속 영업이익 신기록 행진을 이어가며 상반기에만 5조원이 넘는 수익을 내며 초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SK 그룹입장에서는 타 계열사와 하이닉스 간의 시너지는 적을지 몰라도 10년 동안 완만한 하락세인 SKT 주가를 보면서 성장동력에 대하여 나름 고심한 듯 보인다. 벌 땐 화끈하게 버는 반도체 사업인 하이닉스와 통신사업으로서 안정적인 수익수단인 SKT, 넓게 보면 수출의 하이닉스와 수입의 SK에너지의 상보적 관계가 될 수도 있다.

 

게다가 SK 그룹은 재계 3위의 서열에 어울리지 않게 내수 산업으로 인식되는 통신과 석유 산업에 의존한다는 안 좋은 이미지까지 불식시켰다. SK 그룹 석유산업 부분은 수출이 53퍼센트 이상으로 엄밀히 말하자면 수출 역군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내 시장 점유율 50퍼센트에 가까운 독과점 업체이기 때문에 국민들의 인식은 ‘SK 석유사업=내수 산업’인 게 일반적이다. 게다가 전형적인 내수 산업인 통신의 SKT도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하이닉스가 SK그룹에 편입된 이후에는 뭔가 상황이 긍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는 향후 하이닉스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 부문의 영업 이익률에 근접할 수도 있다는 보도마저 나오는 실정이다.

 

SK그룹을 등에 업고 대대적인 투자를 한 성과도 있지만, 2013년에 일본의 반도체 업체인 엘피다가 파산한 걸 계기로 메모리 반도체 사업의 경쟁자가 줄어들어 공급자 중심으로 변하면서 수익성이 개선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덕분에 수천억 단위의 배당이 가능해지면서 이 돈으로 차입금을 갚거나, SK텔레콤에서 먼저 지출하는 융자 상환비용을 메우면 SK그룹은 사실상 1조7000억이라는 SK텔레콤 보유현금으로 14~15년 연간 영업활동 현금흐름(영업으로 벌어들인 현금)이 4조원을 넘는 하이닉스를 인수한 게 됐으니 엄청나게 수지맞는 배팅을 한 셈이됐다. 2017년에는 영업이익 10조를 예상하고 있어서 SK그룹 입장에선 최태원의 배팅이 신의 한수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도시바 지분 확보까지 최종 성공하면 낸드플래시 분야에서도 점유율 확대 가능성이 커져, 명실상부한 메모리업계 2위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penfree1@hanmail.net

기사입력 : 2017-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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